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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 단 하나 뿐인 내 짝. 어느 날 우연히 그 사람과 마주치게 된다면 과연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얼마 전이었던가? 매 회 매 회 가슴 졸이며 안타깝게 보았던 드라마 '소울메이트'를 나는 아직도 생각한다. 드라마 속 남녀들이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심장의 고동을 들으며 자석처럼 자신만의 소울메이트에게로 이끌려가는 과정. 이 드라마는 눈이 알아채지 못한 자신의 반쪽을 심장의 떨림을 통하여 깨달아가는, 낯설지만 설레는 과정을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감동적으로 표현했었다. 나처럼 이 드라마에 심취했던 사람들이 많았던지 이 드라마는 속편을 약속하며 아쉽게 막을 내렸는데, 아직까지 그 다음 이야기는 소식이 없다.
한 때 휴대폰 연결음, 미니홈피의 배경음악 등 나와 관련된 모든 곳에는 소울메이트의 주제곡이 흘렀을 만큼 나는 이 드라마에 빠져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이 무뎌지고 떨림도 사라질 무렵 나는 '소울메이트'와 갑작스러운 재회를 했다. 음악은 추억을 되살리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임이 확실한 것 같다. 이리저리 주파수를 맞추다 우연히 한 채널에서 소울메이트의 주제곡을 다시 듣게 됐고, 내 심장이 쿵 소리를 내며 반응함과 동시에 잊고 있었던 그때의 감동도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미묘하게 슬픈 'this is not a love song'을 들으며 아직도 내 마음이 이렇게 짠 할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였다.
서점에 갔다가 '소울메이트'의 조진국 작가가 새로이 책을 낸 것을 알게 됐다.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역설적인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이 또 얼마나 내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지 짐짓 걱정도 됐지만, 나는 다시금 내 심장의 기분 좋은 쿵쾅거림을 느껴보고 싶었다. 이미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이 나의 소울메이트라고 확신하고 있기에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대한 슬픔과 미련은 없다. 어쩌면 드라마보다 지금의 아내와 함께 보고 이야기했던 그날의 기억이 더 그리운 것인지도 모른다.
아내에게 조진국 작가의 책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를 선물했다. 고맙게도 아내는 책을 감싸고 있는 작가의 얼굴을 보고 이미 모든 것을 알아차린 눈치다. 나만큼 아내에게도 조진국 작가의 글은 큰 감동으로 다가왔던 것일까, 얼른 책장을 넘겨보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나 이미 감동받았어, 와 어떻게 남자의 감수성이 이럴 수 있지?' 아내가 아이처럼 좋아하며 보여주는 부분은 그 책의 목차였다. 책을 볼 때 항상 목차부터 꼼꼼히 보는 것은 아내의 오랜 습관인데, 목차(특히 소설의 그것)는 작가에게서 직접 듣는 책의 줄거리이기 때문이란다.
조진국 작가의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특히 이 부분이 좋아! 그 때까지 목차를 보고 있던 아내가 짚어 준 두 개의 문장은 다음과 같다. '뒷모습을 허락하는 것은 전부를 주는 것이다'와 '울어도 변하는 게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쓸쓸함"이다'. (책을 사서 직접 읽게 될 다른 독자들을 위해, 이 글에서는 그 중 전자만을 소개 한다.) 정말 그렇다. 나도 아내가 뒤에서 나를 안아줄 때가 가장 좋은데, 작가의 말을 인용하자면,
사랑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사랑을 해 봤다고 해도 아무나 쓸 수는 없을 주옥같은 문장들이 이 책에 담겨져 있다. 게다가 책 중간 중간에 책의 상황을 묘사해 놓은 삽화도 예쁘게 들어가 있어서 상상하며 읽기를 한결 쉽게 만들어 주었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 소울메이트가 그랬듯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도 음악과 함께 들을 수 있는데, 책을 음악과 함께 즐긴다는 것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조진국 작가가 직접 고른 서른 네 곡의 사랑노래가 책과 같은 이름으로 시중에 나와 있어서 책 속에서 눈으로만 읽던 음악을 음반으로 즐길 수 있게 됐다. 음악과 함께 한 책이기에 더욱더 내용에 몰입할 수 있었다.
학창시절 요철이라는 단어를 한자로 찾아봤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러한 보양이다 '凹凸(요철)'. 글자라기 보다는 도형이나 기호같은 이 단어를 떠올리면서, 소울메이트를 기호화하면 바로 저런 모양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제각기 불완전한 도형의 형태를 취하고 이 세상에 태어났는데, 단 하나뿐인 사랑의 상대를 만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결합하게 되면 완전한 모양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겨울 끝에는 봄이 오듯이 내 끝에는 항상 네가 있다. 설레지만 두렵고, 안타깝지만 황홀한. 사랑의 뒷면까지 감싸 안은 마법 같은 사랑이야기를 다른 분들에게도 권해드리고 싶다.
한 때 휴대폰 연결음, 미니홈피의 배경음악 등 나와 관련된 모든 곳에는 소울메이트의 주제곡이 흘렀을 만큼 나는 이 드라마에 빠져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이 무뎌지고 떨림도 사라질 무렵 나는 '소울메이트'와 갑작스러운 재회를 했다. 음악은 추억을 되살리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임이 확실한 것 같다. 이리저리 주파수를 맞추다 우연히 한 채널에서 소울메이트의 주제곡을 다시 듣게 됐고, 내 심장이 쿵 소리를 내며 반응함과 동시에 잊고 있었던 그때의 감동도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미묘하게 슬픈 'this is not a love song'을 들으며 아직도 내 마음이 이렇게 짠 할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였다.
서점에 갔다가 '소울메이트'의 조진국 작가가 새로이 책을 낸 것을 알게 됐다.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역설적인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이 또 얼마나 내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지 짐짓 걱정도 됐지만, 나는 다시금 내 심장의 기분 좋은 쿵쾅거림을 느껴보고 싶었다. 이미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이 나의 소울메이트라고 확신하고 있기에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대한 슬픔과 미련은 없다. 어쩌면 드라마보다 지금의 아내와 함께 보고 이야기했던 그날의 기억이 더 그리운 것인지도 모른다.
아내에게 조진국 작가의 책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를 선물했다. 고맙게도 아내는 책을 감싸고 있는 작가의 얼굴을 보고 이미 모든 것을 알아차린 눈치다. 나만큼 아내에게도 조진국 작가의 글은 큰 감동으로 다가왔던 것일까, 얼른 책장을 넘겨보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나 이미 감동받았어, 와 어떻게 남자의 감수성이 이럴 수 있지?' 아내가 아이처럼 좋아하며 보여주는 부분은 그 책의 목차였다. 책을 볼 때 항상 목차부터 꼼꼼히 보는 것은 아내의 오랜 습관인데, 목차(특히 소설의 그것)는 작가에게서 직접 듣는 책의 줄거리이기 때문이란다.
나는 특히 이 부분이 좋아! 그 때까지 목차를 보고 있던 아내가 짚어 준 두 개의 문장은 다음과 같다. '뒷모습을 허락하는 것은 전부를 주는 것이다'와 '울어도 변하는 게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쓸쓸함"이다'. (책을 사서 직접 읽게 될 다른 독자들을 위해, 이 글에서는 그 중 전자만을 소개 한다.) 정말 그렇다. 나도 아내가 뒤에서 나를 안아줄 때가 가장 좋은데, 작가의 말을 인용하자면,
뒤에서 안는다는 건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포옹보다 더 깊다. 눈높이에서 마주보고 주고 받는 안정감이 아니라 날 완전히 상대에게 내맞기고 놓아버렸을 때의 평안함이다. 이제부터 널 안겠다는 예고의 눈빛이나 감정의 준비도 없는 갑작스러운 체온에서 불안감이 아닌 따듯함을 느낄 수 있는 건 상대에게 완전하게 기댈 수 있기에 가능하다. 누군가에게 뒷모습을 허락한다는 것은 전부를 주는 것이다.
사랑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사랑을 해 봤다고 해도 아무나 쓸 수는 없을 주옥같은 문장들이 이 책에 담겨져 있다. 게다가 책 중간 중간에 책의 상황을 묘사해 놓은 삽화도 예쁘게 들어가 있어서 상상하며 읽기를 한결 쉽게 만들어 주었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 소울메이트가 그랬듯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도 음악과 함께 들을 수 있는데, 책을 음악과 함께 즐긴다는 것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조진국 작가가 직접 고른 서른 네 곡의 사랑노래가 책과 같은 이름으로 시중에 나와 있어서 책 속에서 눈으로만 읽던 음악을 음반으로 즐길 수 있게 됐다. 음악과 함께 한 책이기에 더욱더 내용에 몰입할 수 있었다.
학창시절 요철이라는 단어를 한자로 찾아봤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러한 보양이다 '凹凸(요철)'. 글자라기 보다는 도형이나 기호같은 이 단어를 떠올리면서, 소울메이트를 기호화하면 바로 저런 모양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제각기 불완전한 도형의 형태를 취하고 이 세상에 태어났는데, 단 하나뿐인 사랑의 상대를 만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결합하게 되면 완전한 모양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겨울 끝에는 봄이 오듯이 내 끝에는 항상 네가 있다. 설레지만 두렵고, 안타깝지만 황홀한. 사랑의 뒷면까지 감싸 안은 마법 같은 사랑이야기를 다른 분들에게도 권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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