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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서 지인이 울지마 톤즈를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는 트윗을 읽었다. 울지마 톤즈? 소설인가? 새로 나온 영화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갔다. 교회에 가서 목사님 설교를 들었다. 목사님께서 울지마 톤즈에 대한 이야기를 짧막하게 하셨다. 다들 알고 있는 듯 말씀하셔서 유명한 영화인가 싶었다. 집에 오자마자 난 울지마 톤즈를 찾아서 보았다. 

이럴수가... 다큐멘터리였다. KBS1에서 한 다큐. 그런데 아프리카 이야기다. 아프리카는 나와 인연이 깊었다. 10년 전 다녀왔던 아프리카는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속 보았다. 보면 볼수록 난 깊게 빠져들었다. 솟아오르는 눈물을 겨우 참으며, 온 몸에 전율이 계속 흘렀다. 울지마 톤즈를 다보고 2011년을 울지마 톤즈와 함께 시작할 수 있는 건 내게 가장 큰 축복이고 행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故이태석 신부의 삶 그리고 그 후


톤즈는 사람 이름이 아니다. 아프리카 남부 수단의 와랍 주에 속한 도시의 이름이다. 그곳에는 이태석 신부가 살고 있었다. 의사였지만, 신부가 되어서 아프리카로 간 한국의 슈바이처. 학교를 세우고, 밴드를 만들고, 병원을 짓고, 엠블런스를 만든 톤즈의 아버지이다. 나병이라 불리는 한센병에 걸린 환자들을 찾아가 치료해주고 친구가 되어 준 이태석 신부는 톤즈 사람들에겐 신부님이 아닌 아버지였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음악에 소질이 있던 그는 수단 남북부의 전쟁에 상처받은 아이들의 마음을 치유해주기 위해 악기를 가르쳐주고, 수단 남북부가 평화 협정을 맺었을 땐 브라스 밴드를 만들어 총 대신 악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주었다. 브라스 밴드는 각종 큰 행사 때마다 초청되는 유명 밴드가 되었고, 전쟁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자신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행복을 심어주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성당을 먼저 지었을까, 학교를 먼저 지었을까? 이태석 신부의 생각은 학교를 먼저 지었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학교를 만들어 교육을 시켰다. 아무런 희망도 없던 아이들에게 수단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중 2명은 현재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 집이 먼 학생들을 위해 기숙사를 만들었고, 기숙사에는 밤에도 전등을 밝힐 수 있도록 하였다. 태양열로 전기를 공급했기에 베터리의 용량이 부족하지만 공부를 하려는 학생들을 위해 기숙사의 전등에는 전기를 공급한 것이다. 그가 확고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년마다 한번씩 들어오는 한국. 2009년 말에 들어왔을 때 지인의 권유로 건강검진을 받게 되지만,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암 말기였고, 이미 온 몸에 전이가 된 상황이었다. 그는 수단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가족들과 의사의 권유로 항암치료를 받게 된다. 그리고 2010년 1월 14일에 생을 마감하고 주님 품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태석 신부의 죽음은 톤즈 사람들에겐 충격이었고, 눈물이었다. 한센병에 걸린 할머니도, 트럼펫을 부는 소년도, 기숙사에서 공부를 하던 학생도 톤즈의 사람들은 이태석 신부의 이름만으로도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흘리는 것을 수치로 여겨 아무리 아파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는 톤즈 사람들은 이태석이란 이름만으로도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 그건 그가 남긴 사랑이었다. 

왜 아프리카로 갔나요?


그가 투병생활 중에 수단 학생들을 위해 쓴 "친구가 되어주실래요"(인세를 모두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사용한다)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국내도서>종교/역학
저자 : 이태석
출판 : 생활성서사 2009.05.20
상세보기

"신부가 아니어도 의술로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는데 한국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데 왜 아프리카까지 갔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내 삶에 영향을 준 아름다운 향기가 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바친 슈바이처 박사. 어릴 때 집 근처 고아원에서 본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헌신. 마지막으로 10남매를 위해 희생하신 어머니의 고귀한 삶. 이것이 내 마음을 움직인 아름다운 향기다."


그는 그들을 도우러 간게 아니다. 그들과 함께 살기 위해 갔고, 그들의 친구가 되었고, 그들의 사랑이 되었고, 그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의사로서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었지만, 그는 불편하고 좁은 길을 선택했다. 2평 남짓한 공간에서 수단에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었고, 수많은 꿈을 이루어나갔고,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주고 현실로 만들어주었다. 그의 아름다운 씨앗은 수단에서도 점점 자라나고 있고, 한국에서도 영화를 통해, 다큐멘터리를 통해, 블로그를 통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인쇄물을 통해 퍼져나가고 있다. 

우리는 어떤 향기를 내고 있나?


아름다운 꽃인 이태석 신부에게선 꿀처럼 단 향기가 난다. 그의 이타심의 사람의 그것을 넘어섰다. 성경에선 그것을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낸다고 한다. 사람의 힘으론 그런 이타심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단지 이타심만으로 그런 향기를 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친구, 가족, 애인으로서 사랑. 그것이 그를 향기롭게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경쟁 속에 살아간다. 네가 지면, 내가 이기는 것이고, 1등을 끄집어 내리면 내가 1등이 되는 경쟁 속에 살아간다. 돈이 된다면 달려붙어 서로 더 끌어내리려 안달이다. 노르웨이에 있는 비겔란 작품인 인간 오벨리스크의 모습처럼 말이다. 이기심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어떤 향기가 날까? 차마 맡을 수 없는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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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elisk by StaneStane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다행인 것은 우린 아직 살아있고, 살아갈 날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남을 이기기 위해, 남보다 돈을 더 벌기 위해,남보다 레퍼런스를 쌓기 위해 죽어라 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사랑을 주기 위해 살아가면 아름다운 향기가 날 수 있을 것 같다. 

삶은 결승선이 있는 달리기일까? 가끔 미친듯이 달릴 때는 어떤 결승점을 향해 뛰어가는 것만 같다. 모두가 다 뛰고 있으니 나도 뛰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그런 느낌... 하지만 울지마 톤즈를 보고 깨닫게 되었다. 삶은 결승점이 있는게 아니라 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삶이 아름다운 향기를 낸다면 이태석 신부와 같이 행복과 사랑이 함께할 것이고, 악취를 낸다면 불행과 분노가 함께할 것이다. 

아름다운 향기를 내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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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째 계속되는 외국인 근로자 특집. 너무 늘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1박 2일은 히든카드를 준비해놓고 있었다. 마지막에 터트린 히든카드는 너무나 확실한 카드여서 1박 2일은 쉽게 보여주지 않고 끌었나보다. 1박 2일은 여행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우리는 일상을 떠나 새로운 곳을 향해 도전하고 싶어하고, 경험하고 싶어한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 곳을 향한 항해. 그것이 바로 여행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가장 잘한 여행은 떠날 때 설레임으로 가고, 돌아올 때 그리움이 남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행은 언제나 돌아옴을 전제로 하는데, 여행의 끝에는 고향이라는 곳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행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여유롭고 호화로운 휴식의 시간과 공간이지만, 해외에서 근로하는 것 또한 그들에겐 또 다른 의미의 여행일 것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외국인 근로자 수는 작년 10월 법무부가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총 56만 708명(전문인력 약 4만 명)이고, 불법 체류자까지 합하면 약 100만명 정도가 된다고 한다. 이들의 노동시간은 평균 10.7시간이고, 임금 평균은 154만원 정도가 된다고 한다. (참고: 정책공감 블로그) 각기 다른 이유로 먼 타지에 와 있지만, 대부분 고향에 있는 가족을 지키기 위한 책임감으로 코리안 드림을 가지고 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1박 2일에서는 이들을 위해 고향으로 잠시 갈 수 있는 기회를 영상으로 준비해 주었다. 맛있는 카레 요리를 먹고 언제나 그러했듯 잠자리 복불복을 해야 했지만, 잠자리 복불복 대신 작은 선물을 하나 준비했다고 하며 영상을 보여준다. 그 영상에는 같이 온 외국인 친구들의 고향 영상이 담겨져 있었다. 제작진이 직접 각 멤버들의 집에 직접 찾아가서 보고 싶은 가족의 영상과 안부인사를 담아온 것이다.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안아플 아이들, 부모님과 형제들, 눈에 선한 고향 집을 보며 그들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멤버들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물론 시청자도 이 때 함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0년이 넘게 고향을 떠나 먼 타국에서 살아온 그들에게 감히 상상도 못했을 영상 선물은 그 어떤 선물보다도 그 크고 뭉클한 선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잠자리 복불복은 없고 그냥 1박 2일 멤버 파트너와 함께 잠을 자러 간 그들은 방 안에 숨겨진 엄청난 선물과 마주하게 된다. 1박 2일 멤버들은 안에 따로 준비한 또 다른 선물이 있으니 먼저 들어가서 보라고 한다. 방 문을 연 그들의 모두 호흡을 짧고 크게 들이마셨다. 차마 말도 안나오는 그 광경과 선물은 바로 다름 아닌 자신이 가장 그리워했던 가족이었던 것이다. 까르끼의 아내와 두 딸, 칸의 어머니와 형제, 아낄의 어머니, 예양과 아버지, 쏘완의 아내와 딸과의 만남은 이산가족상봉과 같은 감동과 가슴속 깊은 곳까지 전해오는 사랑이 전해졌다. 

빈 가슴을 채워주는 이름, 가족


너무나 외로운 세상에서 살아간다. 그 어떤 시절보다 우을증으로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은 시대가 아닌가 싶다. 그 어떤 때보다 평화롭고, 발전된 사회에서 풍족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감정은 메말라 있고, 외로움에 사무쳐 있는 시대이다. 그 외로움이 자연스럽게 소통이란 키워드로 이어지고, 그것은 온라인을 통해 웹 2.0으로 이어지며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등의 서비스들로 나아가고 있다. 또한 방송 프로그램도 소통이란 키워드를 빼고는 말할 수 없게 되었다. 1박 2일은 그런 소통의 트렌드를 끌고 가는 쌍두마차로 나아가고 있고, 이번 외국인 근로자 3번째 방송에서 소통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주었다. 

소통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면, 1박 2일은 무모하리만큼 큰 제작비를 투자하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대사관들이 도와주고, 사람들과 기업들이 도와주어 5명의 외국인 근로자의 가족을 만나게 해 주었는데, 그런 의지와 기획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소통의 메시지에 중점을 두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단순히 시청률에 연연했다면 자극적인 게임과 인기 아이돌과 함께 러브라인 만들기를 했으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이 시대는 다른 무언가를 갈구한다. 그것이 바로 소통이고, 1박 2일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인 고향, 그리고 그 고향에서 최종 목적지인 가족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고, 그들이 한국에 온 이유이며, 우리가 그들과 하나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까르끼 아내의 말이 너무나 가슴에 절절히 와 닿았다. 혼자 살기 싫다는 아내의 절규. 함께 네팔로 가자는 아내의 말은 현실을 더욱 가슴 아프게 했다. 까르끼는 가족을 위해 먼 타국에 와서 힘든 곳에서 열심히 일을 하는데, 아내는 가족을 위해 같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가족을 향한 책임감에 가족을 떠나왔지만, 가족은 같이 있을 때 비로소 가족이 되는 딜레마적 상황인 것이다. 

똘망 똘망한 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얼굴을 한없이 쓰다듬으며 축복을 주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말 없이 아플 때 읽어보라고 쪽지를 건내는 묵묵한 아버지의 손길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혼자 살기 싫다며 같이 가자고 때쓰는 아내를 보고 어떤 남편이 어깨를 들썩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들썩이는 가장의 어깨는 천하장사 강호동도 무방비로 눈물을 흘리게 만들어 버렸다. 



우리는 왜 눈물이 났을까? 그건 우리의 일상도 다를바 없기 때문이다.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저녁 10시가 넘어서 들어오는 보통 직장인의 생활. 집에서는 잠만 자고 다시 직장으로 향하게 된다. 그나마 남편만 직장 생활을 하면 나은 상황이다. 맞벌이를 하게 되면 온 가족이 이산가족이 되어버린다. 외국인 근로자의 삶과 별반 다를게 없는 것이다. 그들이 외로움과 고독함에 사무치듯, 우리도 외로움과 고독함에 사무쳐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족이 그러운 것이고, 그들을 공감하게 된 것이다. 외국인 근로자와 소통하게 되었고, 그 소통의 매게는 가족이었다. 가족의 사랑이 시청자와 1박 2일과 외국인 근로자를 하나로 이어준 것이다. 

1박 2일, 3전 4기 시작!


1박 2일은 최근 가장 큰 위기에 몰렸었다. 그리고 보란듯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다. 그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소통이란 키워드를 놓치지 않고 원칙으로 삼은 과감함에 있지 않나 싶다. 혹자는 그렇게 많은 제작비를 들여도 되냐고 물을지 모른다. 그러나 시청자들이 흘린 눈물과 느낀 가족의 소중함과는 비할바 못 될 것이다. 톱스타로, 자극적인 상황으로 눈 앞의 위기를 대충 넘기려 했다면 이 위기는 계속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1박 2일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다 할 수 있는 이유는 원칙을 지킴으로 얻어낸 기회이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도 원칙을 지키며 성장해 나가는 1박 2일이 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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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뮈소의 소설 '당신 없는 나를'을 읽었다. 기욤 뮈소가 누군지 모른다고 하자, 아내는 그 유명한 소설가도 모르냐며 핀찬을 주었다.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냐고 묻자, 아내는 기욤 뮈소의 소설을 빼놓지 않고 다 보았다고 한다. 기욤 뮈소는 베스트셀러 '구해줘','그 후에','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등의 소설을 써왔고, 그후에(Et apres...)는 Afterwards라는 영화로 나오기도 했다. '그 후에'는 내년에 출간될 예정이기도 하다.

아내가 읽는 책과 내가 읽는 책의 스타일은 좀 다르다. 아내가 재미있다고 한 책은 내가 보면 재미없었다. 그리고 내가 권해준 책은 아내가 재미없어 했다. 난 주로 자기계발책을 좋아하지만, 아내는 소설책과 같은 문학적인 책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아내는 편향된 나의 독서 습관이 문제라고 말하지만, 어릴 적부터 독서 자체를 싫어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내겐 장족의 발전이다. 그래도 아내의 조언은 내게도 하나의 과제거리였다. 그렇게 해서 아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기로 작심했다.

'당신 없는 나는'을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2시간정도 걸린 것 같다. 읽고 나서는 책을 읽었다기보다는 한편의 영화를 본 것만 같았다. 프랑스와 미국의 센프란시스코가 눈 앞에 펼쳐지는 듯 섬세하고 속도감 있는 글은 순식간에 그 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만들었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았던 프랑스 이름도 어느새 부드럽게 눈에 감기기 시작했고, 왜 아내가 기욤 뮈소의 소설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또한 아내의 영역에 한걸음이나마 공유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사랑과 죽음은 모두 두음절

사랑, 죽음 이 둘의 공통점은? 바로 모두 두음절로 되어있다는 것? 재미있게도 사랑과 죽음은 한국어로도 두 음절이고, 영어로도 두음절이다. 작가가 프랑스인이기에 불어로도 두음절인가보다. 오묘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사랑과 죽음은 <당신 없는 나는?>의 주제이기도 하다.

젊은 패기가 넘치는 마르탱의 사랑, 사랑의 결실을 증오하다 부정으로 죽음을 양도한 아키볼드, 아키볼드를 죽음의 문턱에서 기다린 발랑틴, 그리고 이 모든 이를 사랑한 천사 가브리엘.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면? 생각하기 싫은 질문이지만, 삶은 잔혹하게도 질문에 대한 대답을 연기하더라도 그 대답을 하게 만든다. 기욤 뮈소는 대답하기 싫은 질문에 대해 소설로 대답을 한다. 그리고 사랑과 죽음의 중간 문턱을 만들어내어 사랑과 죽음 사이에서 선택하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담아내고 있다.

줄리엣이 죽자, 로미오도 죽음으로 사랑에 답한다. 어린 애송이의 사랑이라 치부할지도 모르지만, 사랑은 남녀노소가 없이 똑같이 작용한다. 하지만 사랑만이 꼭 죽음으로 내 모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 없어도 죽음과 더욱 밀접해지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대는 오히려 사랑과 죽음보다는 사랑이 없는 고독과 죽음이 걸맞는 콤비인 것 같다. 소외로 인해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 고독과 사랑 또한 떼어놓을 수 없는 두음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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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잃는다면?

우리는 다양한 사랑을 하며 살아간다. 남을 위해 기부하기도 하고, 몰래 도와주기도 하며, 열정적으로 키스를 퍼붓기도 하고, 멀리서 따뜻하고 차분한 사랑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을 잃는 순간 술에 절어 뇌를 마취시키며, 분노하여 시비를 걸고 살인을 저지른다. 때론 너무도 슬퍼서 자기연민에 빠져 죽음을 기도하기도 한다.

그런 시련을 당한 사람들은 사랑이란 달콤한 말에 아예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 사랑을 외면한다. 이 시대에 인스턴트 사랑이 유행하고, 초식남과 골드미스를 동경하는 것도 이런 사랑을 외면하려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예술의 나라 프랑스 작가인 가욤 뮈소는 그의 소설, '당신 없는 나는'에서 사랑을 외면하는 것보다 사랑을 찾아가는 것이 더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다. 설령 죽음이 두렵더라도 그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천국의 열쇠 다이아몬드만 있다면 죽음이 더 이상 사랑을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 없는 나는'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이 감동을 다 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소설은 디테일하고 흥미롭다. 지루한 장면도 없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아쉬움이 더 큰 '당신 없는 나는'은 소외와 고독으로 가득차 사랑에 냉소적이 된 이 시대에 사랑을 하라고 권하는 책인 것 같다.

'당신 없는 나는'의 작가 기욤 뮈소가 방한을 한다고 하네요. 2010년 1월 10일에는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12일에는 독자와의 만남, 13일에는 코엑스 반디앤루니스에서 팬사인회를 한다고합니다. 자세한 정보는 http://www.baleun.co.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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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맘 다이어리 2번째 애피소드를 보았습니다. MTV에서 하고 있는 프로그램인데요, 16살 때 엄마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제 상황을 찍어 엮은 프로그램입니다. 출산 과정까지 보여주고, 실제로 아기가 자라는 모습까지 볼 수 있어서 메시지가 더 강하게 다가오죠. 등장인물들도 실제 인물들이라 굉장히 리얼하고, 감정의 변화를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데요, 리얼의 묘미를 제대로 살린 프로그램이라 생각합니다.

리틀맘 다이어리 2번째 이야기는 치어리더인 페라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임신 사실을 알게 되는데, 남자친구는 오히려 페라를 괴롭혀서 페라는 전화번호를 바꿔버립니다. 목소리 밖에는 등장하지 않는 남자친구이자 아빠는 정말 쓰레기 중의 쓰레기인 것 같습니다.


리틀맘 다이어리는 Dr.리틀파파 정만호의 상담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게시판(http://www.mtv.co.kr/tv/littlemom/content.php?pid=133&m_sq=953)을 통해 익명으로 고민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정만호도 고등학생 때 아빠가 되었으니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좋은 상담자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제 상담들이 꽤 많이 올라오고 있는데요, 고민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페라와 같은 상황이 많은 것 같습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남자친구와 이미 깨진 상태거나 임신 사실을 알리자 남친이 쌩까는 그런 상황이 많은 것 같아요. 두려움에 그랬을수도 있지만, 결코 그래서는 안되는 행동인데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사실이 참 씁쓸하기만 합니다. 정말 쓰레기는 그런 사람들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그렇게 버렸다고 생각하면 소주를 짝으로 들이킬 놈들이 정작에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선 회피하니 말이죠. 정만호씨를 대신해 답하자면 그런 남자들은 아마도 평생 후회하며 살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페라는 매우 씩씩하게 미혼모의 길을 선택합니다. 페라의 부모님 또한 남친과 절대로 만나지 말라며 페라의 미혼모 생활에 찬성했죠. 페라는 졸업식 프롬도 치어리더도 모두 그만두게 됩니다. 학교에 소문이 나자 학교를 그만두고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게 되죠. 우리나라도 비슷한 상황이 일어나는 것이 태반이겠죠?

고민 상담을 보다가 아기를 나면 행복은 하겠지만, 자신의 인생은 끝이라는 댓글이 있더군요. 페라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것을 언뜻 내비쳤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 삶까지 보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죠.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제 아버지가 되었기에 이 부분에 대해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때 아이를 낳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닙니다. 선택과 책임의 문제이죠. 인생은 언제나 선택이 있고, 책임이 뒤 따릅니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나가는 방법이고 원칙이죠. 좋은 것만 선택하고 책임은 회피하기만 하는 삶은 대부분 힘든 삶을 살아갑니다. 경제적으로가 아닌 정신적으로 말이죠. 항상 죄책감에 쌓여 자신이 피했던 책임들이 바위처럼 가슴을 조여오지요.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의 시작입니다. 인생에는 여러 터닝포인트가 있습니다. 그 중 인생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새롭게 시작하게 되는 포인트가 바로 부모가 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세상의 바라보는 모든 시각이 변하게 되죠. 또한 인생의 풍요로움도 더욱 크게 느끼게 됩니다.

페라를 보게 되면 페라의 어머니 입장이 매우 낯선데요, 역시 미국이라 그런지 정보다는 차가움이 더 느껴집니다. 페라가 자동차를 사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사지 말라고 합니다. 페라가 울면서 떼를 쓰자, 어머니는 이성적이 될 때 이야기하자며 매몰차게 나가버리죠. 페라는 어머니가 자신의 인생을 꼭두각시처럼 조정하려 한다고 하지만, 한국의 어머니들을 생각해보면 그 정도면 거의 내놓은 자식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자식을 바라보기만 하는 삶. 그것이 불행할까요? 자식을 바라보는 이유는 의무가 아니라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다면 그 남자친구처럼 자식을 바라보지도 않겠죠. 그 사랑이 아이를 바르게 자라게 하는 원동력이자, 삶의 행복 그 자체입니다.

다솔이와 나

제 기쁨, 다솔입니다. ^^*



우리는 부모가 되기 전까지는 받는 사랑에 익숙합니다. 무언가를 내 손에 쥐어주어야 사랑을 느끼죠. 하지만 부모가 되고나서는 주는 사랑에 익숙해지는 것 같습니다. 자꾸 무언가를 쥐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죠. 때론 그것이 과잉보호가 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눈에 아이에 얽메이는, 내 인생이 없는 삶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죠. 남들이 뭐라하든 아가페적인 조건없이 주는 사랑은 사랑 받는 사람도 행복하게 만들지만, 사랑을 주는 사람에게 더 큰 행복과 만족을 가져다 줍니다.

아기를 낳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불행이 될 수 없습니다. 그건 행복이고, 인생의 참 행복을 알 수 있는 특권이라 생각합니다. 슬프고 기운이 빠지는 날에 전 주로 술을 마시거나 상념에 빠져 슬럼프 속으로 들어가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다솔이 얼굴만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고 힘이 솟죠. 그 어떤 드링크제보다, 피로회복에 최고인 약이 바로 가족이 아니겠습니까.

쓰다 보니 리틀맘들을 위한 상담 글이 되어버리고 말았네요 ^^;; 리틀맘인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은 두려워하거나 피하려 하지 말길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축복이고 행복이니까요. 또한 리틀맘 다이어리를 꼭 보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사랑에는 희생이 필요하듯, 학생 때 임신을 하는 것은 학업과 친구를 희생해야 합니다. 더 큰 행복이 뒤에 찾아오긴 하지만 말이죠. 리틀맘 다이어리를 통해 자신의 행동에 어떤 책임이 따르는지, 그리고 어떤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 지 미리 봐 둔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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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에서 미실의 죽음이 50회에서 이루어졌다. 마치 50부작이 끝난 것처럼 아름다운 여운을 남기며 미실의 최후를 그려내었다. 미실의 죽음은 희화되지도, 과장되지도 않고, 최대한 절제된 가운데 많은 의미를 담으며 솔직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것이 감동이 되어 선덕여왕을 미실의 입장에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것처럼, 이긴 자의 입장에서 씌여지게 된다. 진 사람은 반역자이고, 대역 죄인으로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역사이다. 아이리스 같은 스릴러물에 자주 등장하는 음모론은 이런 역사를 비판하며 시작된다. 숨겨진 역사, 이면사에 대한 의문점에서 시작되는 것이 보통이다.

선덕여왕도 미실과의 싸움에서 이긴 덕만의 입장이 아닌 진자인 미실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그것이 바로 이면사일 것이다. 관점을 바꿔 미실의 입장에서 선덕여왕을 한번 바라봐 보았다.



1. 사랑이란 아낌없이 빼앗는 것이다.
진흥왕 때 미실은 진흥왕을 도와 신라의 국경을 확장하고 신라의 기틀을 마련한다. 덕만과의 대화에서 미실은 덕만이 그저 비담과 같이 순진한 어린 아이와 같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피를 흘려 국경을 세우고, 수많은 계략과 술책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미실이 선택해야 했던 것은 누구보다 더 신라를 사랑하고, 갖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미실을 보고 독하다고 손가락질 했지만, 미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누구보다 신라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기 위해 사랑을 철저히 이용한다. 사랑하는 것을 갖기 위해 사랑을 이용하여 쟁탈하려 한다. 사람을 통해 나라를 얻기 위해 그녀는 인재들과 결혼을 하게 되고, 수많은 아이를 낳게 된다.

그리고 이용하는 사랑이 나라를 얻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면 가차없이 그 아이까지 내쳐버리는 것이 미실이다. 사랑을 나누는 것.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리라. 사다함을 사랑했던 미실. 사다함이 죽었기 때문에 사다함을 영원히 사랑할 수 있었던 것처럼, 미실은 죽음으로 신라에 대한 사랑을 영원히 간직한다.


2. 아들을 향한 사랑
그녀의 아들은 미실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다. 천방지축 하종과 듬직한 보종, 자신의 반대편에 있는 비담까지 그녀의 사랑은 한정이 없다. 바록 자신의 최종 사랑이 신라라고는 하지만, 실수 투성인 하종을 탓하지 않고, 비재에서 진 보종을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감싸고 안아준 것이 미실이다.

비록 비담은 자신의 사랑을 가로막은 진지왕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지만, 그를 죽이지 않고 그냥 싸개로 싸서 왕실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성장한 비담을 마주친 자리에서도 미실은 비담을 항상 살려준다. 미실이 죽기 전 비담은 자신이 듣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사랑한다","미안했다"... 하지만 미실은 사랑은 빼앗는 것이라는 자신의 가치관을 전해준다. 누구나 사랑한다, 미안하다는 것을 말할 수 있지만, 미실의 그것은 자녀를 걱정하는 어머니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3. 덕만만 없었다면...
왕실은 미실의 장난감과 마찬가지였다. 병부와 모든 관리들이 모두 미실의 세력이었으니 왕실은 명목상의 왕실일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난데없이 덕만이 나타났다. 그것도 자신을 제법 따랐던 낭도로서 말이다. 누구도 자신의 적수가 될 수 없었기에 자신의 수를 알려주며 훈수까지 두는 여유를 부리며 덕만을 자신의 경쟁자로 키웠지만, 결국 그 덕만이 청출어람하여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차지하게 된다.

덕만만 없었다면 미실은 여왕이 되었을 것이다. 덕만이 없어도 김춘추가 돌아와 골품제 이야기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머리가 좋은 김춘추라도 미실의 세력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을테고, 그랬다면 역사는 미실을 여왕으로 기록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미실이 왕이 되었다면 신라는 더 흥했을지도 모른다. 김유신 못지 않은 칠숙과 보종이 있고, 전략과 책략으로는 설원을 따라갈 자가 없다. 또한 김춘추의 비상한 머리는 미생이 대신할 수 있는데다 알천랑 못지 않은 화랑들이 미실을 따랐을 것이다.


그랬다면 신라는 당나라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을테고, 더 큰 영토와 국력을 과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실은 졌고, 덕만에서 자신의 사랑을 넘겨준다. 한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백제가 쳐들어와 국경이 무너질 수 있었기에 자신의 사랑이 위험에 쳐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기회를 버린다. 미실은 여왕의 자격이 충분하였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3대 왕을 모두 보필한 미실. 그녀는 선덕여왕 전에 이미 신라의 왕이 아니었을까...

무엇보다 미실의 연기를 맡은 고현정의 연기가 일품이었다. 앞으로 고현정의 활발한 활동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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