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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고향 '면산'에서 만나는 옛 이야기

산서성 면산에서 봐야 할 다섯가지



중국 산서(山西)성 여행의 핵심이 되는 면산

중국 대륙을 가로지르는 태항산맥의 서쪽에 있다하여 산서성이라 불리는 이곳은, 언뜻 시간이 멈춘 듯 낙후해보이기도 하지만 유난히 '재벌'이 많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과거 석탄이 대량으로 나오면서 석탄 재벌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때 대박의 꿈을 꾸며 산을 사서 석탄광을 개발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러한 시류에 따라 이곳 '면산'도 개인 소유의 산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탄광보다 '관광지'로서 많은 여행자들에게 손짓하고 있으니, 재미있는 일이다. 

실제로 면산은 산서성을 여행할 때 꼭 와봐야 할 필수코스. 절경도 절경이지만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한 까닭이다. 이곳 면산에는 춘추시대의 은사(隱士), 개자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개자추는 진나라 문공이 망명생활을 할 동안 가까이서 그를 모셨는데, 훗날 문공이 왕위에 올랐음에도 자신을 등용하여 대접해주지 않아, 실망한 나머지 어머니를 모시고 산으로 숨어들어갔다. 잘못을 뉘우친 문공이 개자추를 뒤늦게 설득하였지만 이미 문공에게 실망한 개자추는 다시 돌아보지 않았는데, 문공은 궁여지책으로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고 만다. 개자추를 찾기 위해 그가 숨은 산 전체에 불을 지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개자추는 결국 불에 타 죽게되고, 이를 안타까이 여긴 문공이 개자추를 기리며 뜨거운 음식을 먹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찬밥을 먹는 한식(寒食)의 유래라고 한다. 그리고 문공이 불을 지른 그 산이, 바로 면산인 것이다. 



1. 스릴 넘치는 개공사당과 서현곡

 

면산은 생각보다 굉장히 높고 험준한 산이다. 곳곳에 기이하게 생긴 사원들이 자리하고 있다. 도교와 불교가 뒤섞인 사원들이다. 면산을 여행하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 바로 앞서 소개한 '개자추' 이야기인데, 면산 곳곳에 옛 이야기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면산 여행은 개자추의 흔적을 좇는 여행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개자추와 개자추 어머니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만든 '개공사당'이다.



종종 중국의 스케일에 아연해지곤 하는데, 면산에서도 그 면모를 여실히 느꼈다. 바로 산을 뚫어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모습이다. 1인당 15원으로, 한화 3천원 쯤 하는 비용을 지불하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개공사당에 쉽게 오를 수 있다. 산에 굴을 파서 수직으로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그들의 '대담함'이 놀랍다. 등산을 하지 않아도 바로 산을 오를 수 있다니 묘할 따름이다. 실제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곧장 산 정상에 도착한다. 잘 닦인 길을 따라 걸으며 개공사당을 향했다. 





개공사당은 동굴 안 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 사실 이곳은 대부분이 한번 파괴되었다가, 사유지가 되면서 석탄재벌에 의해 재건된 것이다. 이런 사원 하나를 재건하는데 약 20억 정도가 든다고 하니… 그의 재력을 짐작해볼 수 있다. 1998년부터 개발을 시작한 면산은 40년이 지나면 정부에 기부채납을 약정하고 개발한 곳이라고 한다. 


개공사당을 보고 내려가는 길은 도보를 이용하기로 했다. 내려가는 길에 어디선가 계곡 소리가 들려온다. '서현곡'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자못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은 것을 후회했는데… (^^)
 


바위에 박아놓은 계단이 아슬아슬 계곡 아래로 펼쳐지는 것이었다. 마치 간이시설처럼 불안하게 만들어놓은 계단에 또 한번 아연실색. 세상 가장 아찔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생각보다 튼튼한 듯 하나, 몸무게에 자신이 없거나 잽싸지 않다면 가능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것이 안전할 것 같기도 하다. (^^;)


심지어 계단이 없는 곳도 있다! 그런 곳을 만나면 쇠줄을 의지해서 암벽을 타듯 걸어가야 한다. 



조마조마한 나와는 달리, 아기를 안고 위태롭게 이 길을 걸어가는 가족들도 있었다. 심지어 가족사진을 찍는 여유까지! 중국인들의 스케일은 과연 대단하다. 그러나 그들이 끝까지 이 계곡길을 따라 내려갔을진 모르겠다. 가면 갈 수록 더 아슬아슬해지기 때문. 나 역시 내 아이들을 떠올리며, 절대 이 길은 애들을 데리고 올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출렁다리의 등장. 그러나 출렁거리는 정도가 너무 심하다! (^^;) 오죽하면 계곡물에 발이 다 빠질 정도다. 점점 쇠줄을 잡은 두손에 힘이 들어갔다. 사진을 찍은게 기적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연인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아주 신이 났다. 알콩달콩 잡아주고 끌어주고 모험을 즐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실제로 웬만한 놀이기구보다 스릴있는 곳이니, 이런 모험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물론 별다른 안전장치가 없는 만큼 본인의 안전에는 유의해야겠다.  


이 계단을 따라 내려오는 것은 거의 40분 이상이 소요되었다. 점점 각도가 90도에 가까워지는 출렁다리와 계단. 허공을 걷는 듯한 진풍경을 연출한다. 마치 신선이 된 것 처럼 폭포 앞을 걸어가는 것이다.


이 계단을 따라 내려오는 것은 거의 40분 이상이 소요되었다. 점점 각도가 90도에 가까워지는 출렁다리와 계단. 허공을 걷는 듯한 진풍경을 연출한다. 마치 신선이 된 것 처럼 폭포 앞을 걸어가는 것이다.



2. 절벽에서의 하룻밤, 운봉서원호텔

 

면산에는 숙소가 딱 2개있는데, 그 중 절벽에 세워진 이 운봉서원 호텔은 인기만점이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거의 방을 잡기 힘들다고 한다. 실제로 면산에 다다르면 상식을 뛰어넘는 규모로 서있는 이 호텔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1박에 필요한 비용은 제일 저렴한 방이 RMB 480원(한화 약88,000원) 이고, 가장 비싼 방이 RMB 3588(한화 약 664,000원)이다. 이 호텔은 로비가 두 개인데, 로비 하나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으로 올라가면 또 다른 로비가 나온다. 객실이 10층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내부는 일반 호텔과 비교해 다를 바 없다. 아늑하고 깔끔한 분위기이며 시설도 부족함이 없다. 다만 산 속에 있는 호텔이다보니 온수 시간이 정해져있어, 밤 늦은 시간에 샤워를 하려하면 온수가 나오지 않아 낭패를 보는 수가 있다. 그것을 제외하곤 여느 호텔과 다르지 않지만, 커튼을 젖히고 창 밖을 바라보면 입이 딱 벌어진다. 창 밖의 경치는 그야말로 절경이자 별세계이기 때문. 절벽 위에서 자는 듯한 아찔함이 느껴진다. 


운봉서원 호텔에서의 하룻밤은 산서성 여행 일정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밤이었다. 반짝이는 별들과 달빛만이 산 속을 비추고, 고요한 가운데 평온함이 느껴지던 그 밤은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3. 절벽에 종이 달린 운봉사

 

운봉서원 호텔 바로 옆에는 운봉사가 있다. 120계단을 올라야 오를 수 있는 운봉사. 108번뇌에 12연기를 더해 120계단이라고 한다. 하지만 운봉서원 호텔에서 숙박을 하면 그냥 걸어서 바로 운봉사를 향할 수 있다. 운봉사는 불교사원으로 그 역사가 당태종 때부터 된 유명한 사원이다.

운봉사에도 오래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당태종 14년인 640년, 장안에 가뭄이 심하게 들어 백성들의 삶이 궁핍하던 어느 날, 면산에만 비가 내렸다. 의아해 하던 당태종의 귀에 '지초스님 덕분에 비가 왔다'는 소문이 들렸고, 당태종은 직접 지초대사를 만나러 갔다. 비를 내리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당태종에게 지초스님은 쌀뜨물을 서남방으로 뿌려 장안에 비가 오게 만들었다. 그로 인해 가뭄은 해갈되었고, 당태종은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자 다시 한번 지초대사를 찾는다. 그러나 이미 지초대사는 입적한 후였기에, 그를 기리기 위해 이 운봉사를 지었다고 한다.



운봉사는 역시 동굴 안에 위치해있다. 마치 어머니 속에 안겨있는 듯 하다하여 원래는 '포복사'라 불렸다고 한다. 높이 약 60m, 깊이 50m, 길이 180m의 이 동굴은 200여간의 전각, 여관 및 1만여 명의 관광객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절벽에는 방울종과 등불이 붙어 있다. 이를 영(靈)과 등(等)이라 부른다. 소원을 빌며 이루어지기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기다릴 등(等)과 같은 발음인 등(燈)을 달고, 소원이 이루어지면 다시 이곳을 찾아서 감사함을 표시한다는 뜻으로 영험할 영(靈)과 발음이 같은 방울 영(鈴)을 단다고 한다. 즉, 개개인의 소원이 방울과 등불에 담겨있는 것이다. 물론 이 등과 영을 달기 위해서는 비용이 필요하다. 절벽 위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와 달게 되는데 등 하나에 4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이처럼 운봉사는 예전부터 영험한 기운이 있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아 불공을 드리는 곳이다. 영과 등이 아니어도, 난간에 빼곡히 빨간 줄을 묶어 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빨간 줄 역시 하나하나가 소원을 담은 줄이라고 한다. 




4. 12존의 등신불이 있는 정과사

  

운봉사를 보고 정과사(正果寺)로 향했다. 가파른 길을 따라 멋진 풍경을 감상하면서 다다르니, 마치 무협 만화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 펼쳐져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름조차 멋진 '영웅탑'에는 무림 고수가 숨어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가 풍겼다. 





우리가 정과사로 향한 이유는 바로 이곳이 중국에서 가장 많은 등신불을 안치한 곳이기 때문이다. 등신불이란, 보통 사람의 키와 똑같이 만들어놓은 불상을 뜻한다. 그러나 그 속에는 실제로 입적한 고승들의 시신이 들어있다. 포골진신이라고도 부르는 이 등신불은, 오랜 수행으로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고승의 유체에 진흙을 바르고 채색하여 모신 것이다. 고승은 마지막 몇 십일을 대추와 물만으로 속을 깨끗하게 비우며 열반에 이른 뒤, 마치 미이라처럼 이곳에 남아 중생을 돌보는 것이다. 

정과사에는 12존의 등신불이 안치되어있는데, 8구는 불교의 스님들이고 4구는 도교의 도사들이다. 당대의 사본, 회덕, 송대의 사현, 지현, 금대의 신원 등 고승들의 모습이 그대로 간직되어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진흙이 손실되어 신체 일부가 드러난 등신불도 몇 구 있었다. 자세히 보면 손톱이 보이거나 두개골, 또는 발의 뼈가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그저 경건하기만하다.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을 꿰뚫리는 것만 같다. 



5. 중국의 포탈라궁, 대라궁

 

이제 마지막 코스다. 중국 현존하는 도교 사원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대라궁으로 향해보자. 이곳은 종종 티베트의 포탈라궁(Potala Palace)과 비교되곤 한다. 대라궁은 당나라 현종 때 짓기 시작하여 역대 황실을 거치며 규모를 계속 늘려온 것으로, 최근에 폭격으로 파괴되었다가 다시 중건되었다.

중건된 것이라곤 하나, 규모는 어마어마하여 기둥처럼 보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거나 계단을 통해서 오를 수 있다. 



대라궁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저절도 득도할 것 같은 풍경이었다. 비록 안개 때문에 사진으로는 표현되지 않았지만, 이곳은 면산에서 가장 유명한 뷰포인트이기도 하다. 면산이 시작되는 지점과 드넓은 평야, 지평선까지 바라볼 수 있기 때문. 


대라궁 내부에는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예술작품부터 도교의 유물까지 그 폭이 넓은데, 그 중에서도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신라시대 최치원 선생에 대한 기록이었다. 당나라 유학 시절, '황소((黃巢)의 난'을 겪으며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섰던 최치원 선생. 그의 격문을 보던 반란군의 황소가 놀라서 침대에서 떨어졌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처럼 면산은 그 일부분만 둘러봐도 곳곳에 옛날 이야기가 깃들어있어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거기에 아름다운 자연 풍경은 절대 놓칠 수 없는 매력이기도 하다. 푸른 산에 파묻혀 마음 속 깊은 곳까지 깨끗해지는 듯한 그 느낌은 참 오랜만이었다. 게다가 과감히 산을 뚫어 엘리베이터를 세우거나, 절벽에 호텔을 짓는 대륙의 기질도 엿볼 수 있으니 이 어찌 놀라운 체험의 연속이 아닐 수 있겠는가. 숨겨진 사연만큼이나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들도 재미있다. 역시, 산서성 여행의 핵심 코스라고 할 만 하다. 


※ 취재 지원: Get About 트래블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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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놀라운 스케일의 중국 산서성

 

중국은 내게 특별한 곳이다. 청해성, 산동성, 하남성, 북경등 중국의 다양한 곳을 여행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2년 동안 중국에서 한국어강사를 하며 아내와 함께 지냈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첫째 아이를 가졌고, 나의 첫 제자들도 만났다. 마치 제 2의 고향이라도 되는 듯 중국에 대한 애정은 날로 더 깊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한번 그리운 중국을 가게 되었다. 이번에는 어떤 추억이 남게 될까. 

 

4박 5일간의 중국 산서성 여행. 중국에서도 처음 밟아보는 땅이기에 출발 전부터 설렜다. 예전에 TV에서 우연히 산서성의 면산을 본 적이 있었다. 절벽에 세워진 호텔과 사원의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언젠가 저곳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 얼마나 기대가 되던지!  실제로 산서성 여행은 마치 춘추전국시대로 돌아간 듯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산서성은 산동성 옆에 있다. 산서와 산동. 산의 서쪽과 동쪽에 있는 성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산은 태항산맥을 말한다. 성을 나눠주는 산맥인 셈이다. 이번 일정에서는 중국 명산으로 손꼽히는 태항산도 함께 찾아가보았다. 태항산 역시,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었다. 

 

 

Day 1.  인천에서 석가장으로

석가장- 신향

 


 

석가장. 사실 아내와 나는 예전에 석가장에서 한국어강사를 할 뻔 했다. 석가장의 학교에서 한명만 필요하다고 하여 결국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지만 오랜만에 다시 그 이름을 들어보니 더욱 반가웠다. 인천에서 2시간 정도 걸려서 석가장에 도착. 땅을 밟자마자 석가장 음식부터 맛보러 갔다. 

 

 


 

양념에 절여서 찐 삼겹살에 볶은 찻잎과 함께 잎파리 모양의 빵에 쌓아서 먹는 家乡扣肉带饼(jiāxiāng kòuròu dài bǐng)을 먹었다. 잎파리 모양의 빵의 가운데가 갈라져 있어서 그 안에 고기와 양념을 넣어 먹는 맛이 일품이다. 

 

 


 

중국의 고속열차인 뚱처(東車)를 타기 위해서이다. 시속 300km로 달리는 뚱처는 우리나라의 KTX라 보면 된다. 이 기차를 타고 1시간 30분 정도 더 가서 신향에 도착했다. 

 

 


 

주거니 받거니 칭따오 맥주를 한잔씩 기울이며 앞으로의 여행을 같이 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이제는 마트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칭따오 맥주. 하지만 역시 현지에서 먹는 칭따오 맥주의 맛은 다른 것 같다. 

 

 

 

Day 2. 우공이산의 태항산

석가장- 태항산(구련산-천계산-왕망령)- 황성상부

 

우공이산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우공이라는 아흔 살 된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집 앞에 산들이 가로 막혀 있자 생활하는데 불편하여 가족에게 힘을 합쳐 산을 옮기자고 한다. 우공과 아들과 손자는 지게에 흙을 지고 바다에 갔다 버리고 오는데 꼬박 1년이 걸렸는데 이 모습을 본 이웃이 어찌 이렇게 무모한 일을 하냐고 하자 우공은 내가 죽으면 아들이, 아들이 죽으면 손자가 계속 할 것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산이 옮겨질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산신(산을 지키는 신)이 산을 구해달라고 옥황상제에게 이야기하여 산을 각각 멀리 옮겨 놓았다고 한다. 그 산 중 하나가 바로 태항산이다.

그저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로 웃어 넘길 수도 있지만, 실제로 태항산은 우공이산의 전설이 생길 만큼 '사람이 했다고는 믿겨지지 않는 것들'이 많아 놀라운 산이었다. 

 

 


 

일어나자마자 바로 구련산으로 향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구련산에 있는 160m의 엘리베이터. 유리관으로 되어 있는 이 어마어마한 엘리베이터는 절벽 위에 있는 서련촌이라는 마을에 가기 위한 통로이다. 절벽에 세워놓은 아찔한 엘리베이터. 천호폭포 옆에 있는 이 엘리베이터를 통해 구련담에 오를 수 있다. 

 

 


 

사람이 직접 뚫은 터널도 있었다. 중국의 현지인들이 자비를 털어 13년 가까이 공사하여 뚫은 천계산의 암벽터널도로인 괘벽공로이다. 중간중간에 뚫린 구멍은 깨어낸 돌들을 버리고 어두운 터널 안을 밝히고자 뚫은 것이라고 한다. 

 

 


 

굽이굽이 산길에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드는 왕망령. 광무제가 왕망의 추격을 피해 숨었던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는 왕망이 추격하자 광무제가 죽을 각오로 뛰어넘은 곳이 있다. 뒤쫓던 왕망이 뛰어넘은 간격을 보고 떨어져 죽었을 것이라 판단하고 돌아갔지만, 겨우 목숨을 건진 광무제는 훗날 힘을 키워 왕망의 신나라를 멸망시키고 후한을 건국했다고 한다. 

 

 


 

태항산을 구경한 후 바로 황성상부로 넘어왔다. 황성상부의 야경은 정말 입이 쩍 벌어질 정도이다. 사방에 있는 모든 산에 조명을 두어 하늘에서 별이 떨어진 듯한 장관을 펼쳐낸다. 호텔방에서 보는 야경은 술이 없어도 야경에 취하게 만들었다. 

 

 

 

Day 3. 절벽에 지은 호텔이 있는 면산

황성상부-해회사 – 면산 (개공사당-운봉사-정과사)

 


 

황성상부를 둘러보는데에만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 모든 집이 한 사람의 집이라니 하나의 마을을 이룬 것 같았다. 산서성에는 석탄이 나와서 석탄 재벌이 많다고 하더니 청나라 강희제의 스승의 집인 황성상부는 그 스승의 아버지대에 석탄으로 인해 이런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고 한다. 

 

 


 

황성상부에서 조금만 더 가면 해회사를 볼 수 있다. 멀리서 봐도 한눈에 보이는 두개의 탑. 앞의 탑은 당나라 때 만들어졌고, 뒤의 탑은 명나라 때 만들어졌다. 앞의 탑이 기울어지자 명나라 때 기울어짐을 막고자 뒤에 더 큰 탑을 세우게 된 것이라고 한다. 지반을 눌러주는 효과로 지금까지 잡아주고 있다고 하는데 왠지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이 생각났다. 

 

 


 

4시간을 이동하여 면산에 도착하였다. 면산 역시 옛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바로 춘추시대의 은사(隱士), 개자추 이야기다. 개자추는 진나라 문공이 망명생활을 할 동안 가까이서 그를 모셨는데, 훗날 문공이 왕위에 올랐음에도 자신을 등용하여 대접해주지 않아, 실망한 나머지 어머니를 모시고 산으로 숨어들어갔다. 잘못을 뉘우친 문공이 개자추를 뒤늦게 설득하였지만 이미 문공에게 실망한 개자추는 다시 돌아보지 않았는데, 문공은 궁여지책으로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고 만다. 개자추를 찾기 위해 그가 숨은 산 전체에 불을 지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개자추는 결국 불에 타 죽게되고, 이를 안타까이 여긴 문공이 개자추를 기리며 뜨거운 음식을 먹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찬밥을 먹는 한식(寒食)의 유래라고 한다. 그리고 문공이 불을 지른 그 산이, 바로 면산이다. 

 

 


 

그런 옛 이야기가 전해져오는 면산이지만, 여행자인 내 눈에는 그보다 먼저 절벽에 세워진 아찔한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 속 건물은 절벽에 세워진 호텔인 운봉서원호텔. 면산에서 절벽에 세워진 사원이나 호텔을 보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계곡의 바위에 발판을 박아 계단을 만든 다이나믹한 코스도 있다. 계곡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의 개공사당에서 내려오는 이 코스는 롤러코스터보다 더 스릴있다. 얼마나 스릴이 있었는지 손이 떨려 제대로 찍은 사진이 없을 정도다. (^^;)

 

 


 

어디 그 뿐이랴. 웬만한 곳은 다 아슬아슬한 절벽에 계단이 있다. 정말 놀라운 사실은 이 면산이 개인의 소유라는 점이다. 산서성의 한 석탄 재벌이 면산을 통채로 사서 이 모든 것을 최근에 만들었다고 하니 또 다른 의미에서 면산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Day4. 평온한 고성, 평요고성

면산 대라궁- 평요고성

 


 

거북 모양의 전략적 요새이자 성인 평요고성. 2700년전에 만들어져 예전의 모습을 지금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성이라 더욱 가치가 높은 곳이다. 성루에 올라서 보는 명청거리의 모습은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게 만들어주었다. 

 

 


 

누들로드의 시작인 산서성. 주식이 밀인 산서성에서는 도삭면이 대중적이다. 면을 반죽하여 양철조각 같은 것으로 삭삭 깎아서 만드는 면요리다. 빠르게 반죽을 쳐 내리는데도 정확하게 작은 냄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신기했다. 

 

 

 

Day 5. 아쉬움을 뒤로 하고 석가장에서 인천으로…

평요고성- 석가장 조운묘 – 인천

 


 

다시 석가장으로 향했다. 석가장은 알고보니 삼국지의 조자룡이 태어난 곳이었다. 한번도 패배해 본 적이 없고, 유일하게 늙어서 죽은 조운.

 

 


 

유난히 더 짧게 느껴졌던 마지막 날을 뒤로하고… 비행기를 타고 다시 인천으로 돌아와 북적이는 사람들과 세련된 건물들을 보자 묘한 느낌이 든다. 마치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짙은 구름 사이로 붉은 선을 그려내는 노을을 만났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흐린 하늘이었는데, 그 사이로 선명하게 타오르는 노을이 더욱 여행의 여운을 짙게 만들어주었다. 흐린 하늘처럼 잔뜩 바쁘게 살아가던 나날 가운데, 이렇게 붉은 노을처럼 아름다운 여행의 추억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 새삼 감사했다.  산서성의 추억. 앞으로 이야기 보따리를 하나씩 풀어가며 다시 그 석양 속으로 빠져들어야겠다.

 

 

※ 취재지원 : 하나투어 겟어바웃 트래블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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